“맨손 이민자에서 흑인교회 설교까지”…끝을 보는 남자, 원광혁의 파란만장 인생 > 미주뉴스

본문 바로가기

미주뉴스

이 섹션에 올리는 글은 애리조나,애트란타,보스톤,캘거리/에드먼튼,캐롤리나,시카고,콜로라도 스프링스,달라스,덴버,플로리다,휴스턴,메네소타,필라데피아,샌프란시스코,,토론토,밴쿠버,버지니아,와싱턴DC 총 18개 미주 지역에 동시 개제 됩니다 

“맨손 이민자에서 흑인교회 설교까지”…끝을 보는 남자, 원광혁의 파란만장 인생

페이지 정보

본문

1974년, 스물네 살의 원관혁은 부모님과 어린 두 남동생,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애리조나의 뜨거운 땅 위에 발을 내디뎠다. 말도, 인맥도, 돈 한 푼 없이 시작한 이민 생활. 그때만 해도 미국은 꿈의 나라였지만, 동시에 맨손으로 버텨내야 하는 전쟁터였다.


1년 뒤 가족은 시카고로 터전을 옮겼고, 원관혁은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제야 진짜 ‘이민자의 삶’이 시작됐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키우고, 내일을 준비하는 무게감. 그 모든 것이 어깨 위에 얹히던 시절이었다.


“회사원으로 살다, 결국은 내 사업을 한다.”


70~80년대 한인 1세대에게는 거의 하나의 공통된 로망이었다. 원관혁도 그 길을 걸었다. 시카고에서 8년 동안 회사원으로 성실히 일한 뒤, 그는 가족을 데리고 텍사스로 내려왔다.


부부가 거의 맨손으로 시작한 작은 드라이클리닝 샾. 그 샾은 시간이 지나면서 두 곳으로 늘어났다.아침 일찍 문을 열고 문을 잠그는 날들의 연속. 손님 한 분 한 분의 옷을 받아들 때마다 “이분의 인생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만들어 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림질을 했다.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5234_6753.png

어느상장 보다도 봉사상이 그에게는 가장 값지다고 했다.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4755_1053.png
커뮤니티 회원이 되면 대형 유통업체에서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품질좋은 식료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눌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 DNA는 역시 어디 가지 않았다. 그 시절 텍사스에만 450여 개의 한인 세탁소가 있었고, 미 전역에는 1만 5천 개가 넘었다. 그들 모두가 비슷한 꿈을 안고 있었다.


사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서 문제도 따라왔다. 환경 규제, 화학물질 처리, 법적 분쟁…. 업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협회가 만들어졌다.


원관혁은 어느새 회장으로 선출됐고, 수년 동안 한인 업주들의 권익을 위해 뛰어다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미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났다. 고객의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그중에는 변호사와 의사 같은 전문직이 많았다. 법적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 고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아내가 아팠을 때는 의사 고객이 직접 약과 주사를 들고 두 번째 세탁소까지 왕진을 와주었다.


그때였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나도 이 사회에 돌려줘야겠다.”

그 다짐은 오랜 시간 가슴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인구 2만 3천 명의 작은 도시, 와타가(Watauga).


두 개의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족은 이곳에 정착했다. 조용하고 평범한 타운. 지금도 그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세탁소를 정리한 뒤 그는 청소업에 다시 도전했고, 그러던 중 인생의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눈을 떴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원관혁은 ‘한미애국기독인연합회’에 가입해 회장으로 활동하며 전미주를 돌기 시작했다.


그의 에너지는 멈추지 않았다. “에너지가 넘치면 어딘가에 써야 사고가 안 난다”는 말이 그의 인생 철학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60세가 되던 해, ‘씨 뿌리는 자 교회’에서 장로가 됐다.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흑인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4~5년 동안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동양인은 단 두 사람. 원광혁 장로 부부였다.영화〈시스터 액트>를 연상시키는 열정적인 예배, 온몸으로 찬양하는 신앙.그곳에서 그는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깊은 깨달음도 얻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모두가 평등하구나.”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5454_2368.png

흑인교회 교우들과 함께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6403_8941.png
원관혁장로는 '한미애국기독인 연합회'회장직을 수행하며 대규모 행사들을 주관 진행했다.


어느 주일, 담임목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다음 예배에서 설교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망설임은 잠시였다.도전은 늘 그의 연료였다.그러나 강단에 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국어 설교도 해본 적 없는 장로가, 그것도 영어로 설교를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도전이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교인들에게 'Jesus, Amen' 이면 충분하다.”그렇게 그는 설교를 마쳤고, 놀랍게도 한 번 더 강단에 섰다.


흑인 교회에서 영어로 설교한 한인 장로—아마도 그 유일무이한 기록은 원관혁 장로의 몫일 것이다.

이민자, 사업가, 협회장, 정치 활동가, 그리고 장로. 원광혁의 인생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는 늘 한 가지를 택했다. “시작했으면, 끝을 본다.”


오늘도 그는 와타가의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다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끝없이 솟아나는 에너지를 세상을 향해 쓰기 위해.현재 원관혁 장로는 와타가 타운 커뮤니티에서 부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백인 주민이 95%인 타운에서 동양인이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뜻깊은 일이다. 부회장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그는 소리 없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갔다.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도네이션으로, 소금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표시 나지 않게 일원이 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의 헌신적인 자세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빛으로 다가왔고, 보이지 않지만 맛으로 소금의 맛을 느끼게 했다.


그가 로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한인 사회에서 여러 중요한 직분을 감당하며 온 열정을 다해 봉사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인 사회를 그는 깊이 우려한다. 이전에는 정치적 이념 없이 모두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 편히 다가설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6555_6021.png


원관혁 장로는 로컬 커뮤니티에서 직접 봉사하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미국 사회의 힘은 ‘큰 정치’가 아니라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가 경험한 미국의 시스템은 단절돼 있지 않았다. 교회 소그룹, 지역 자원봉사 모임, 직능 단체, 커뮤니티 협회 같은 작은 조직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시의회와 주정부, 나아가 연방 정치로 이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해 보이는 회의와 봉사 활동이 실제로는 여론을 만들고, 인맥을 형성하며, 정책의 방향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는 현장에서 체감했다.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6666_7453.png
 

원 장로는 “한국에서는 정치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라면, 미국은 아래에서 위로 쌓아 올리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한 사람의 봉사, 한 단체의 목소리가 축적되면서 결국 주류 사회의 결정에 반영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작은 모임 하나도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특히 한인 사회가 이 점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행사에 참석하고 후원금을 내는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소모임 활동이야말로 주류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현실적인 통로라는 것이다.


원 장로에게 봉사는 더 이상 ‘선의의 활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실제적인 교과서였고, 이민자로서 뿌리내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경험이 결국 미국 주류 사회의 정치와 구조를 읽는 눈으로 이어졌고, 그는 그 연결고리를 몸으로 증명해 온 셈이다.


그리고 그는 호소한다.“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투표다. 아직도 한인들의 투표 참여율은 낮다. 한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선 투표를 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1세대가 2세, 3세에게 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외친다.


또 하나, 한인들에게 도네이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미국 사회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단 1달러도 귀중하고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모두가 미국이라는 용광로에 녹아내릴 때,한국인의 정체성을 더욱 자랑스러운 코리안으로 2세들이 살아가지 않을까…”


그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조용한 와타가의 한 골목에서,작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끝까지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에필로그로 이어짐 ->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6592_395.jpg
 

[에필로그]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뜻밖에도 ‘불로초 버섯’이다.
사회활동도, 교회도, 봉사도 아닌 버섯 이야기라니. 하지만 원 장로의 일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몇 해 전, 그는 평소처럼 산행을 하다 유난히 색이 고운 버섯 하나를 발견했다.

 

갈색도 흰색도 아닌, 묘하게 깊고 단단한 색감.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조심스럽게 맛을 봤다. 혀가 저리거나 쓰지 않았다. “어?” 하는 순간, 머릿속에 스친 이름 하나.
불로초 버섯?

설마 하는 마음에 그는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누이에게 사진을 보냈다. 잠시 후 돌아온 답장은 짧고도 강렬했다.
“그거… 불로초 맞아.”

그 순간부터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그 버섯을 술로 담그고, 음식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한 변화가 찾아왔다.


bbc22b45441ee963759287be69ebe862_1770745741_1628.png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이었다.
“글씨가 또렷해졌어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안경을 벗는 시간이 늘었고, 밤 운전도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그뿐이 아니었다.
그가 불로초를 나눠준 지인들 역시 하나같이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눈이 덜 피곤해.”
“신문이 잘 보여.”
마치 조용한 입소문처럼, 그의 주변에서는 ‘눈 밝아지는 버섯’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원 장로님이 52년생인데 저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 불로초 때문 아니냐”고.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움직이고, 정치 집회며 교회 행사며 봉사 일정까지 거뜬히 소화하는 그의 체력과 집중력. 누군가는 타고난 열정이라 하고, 누군가는 신앙의 힘이라 말한다. 하지만 요즘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슬쩍 덧붙인다.


“거기다 불로초 한 스푼.”

원래 알래스카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진 불로초 버섯. 그런데 그 귀한 버섯이 지금, 텍사스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해 삶의 활력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원광혁 장로다.


노년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하루.
어쩌면 그의 에너지 비결은 거창한 건강 비법이 아니라, 자연을 향한 호기심과 즐길 줄 아는 태도, 그리고 그 위에 살짝 얹힌 불로초의 힘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는 말한다.
“몸이 움직일 때까지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죠.”

알래스카의 불로초가 텍사스에서 피어난 이야기처럼, 그의 인생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리아월드/휴스턴교차로



100b7f54bdfcf8650ae504c6598c1576_1770752063_559.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Login

회원가입
e-업소록 더보기
이번호 신문보기 더보기

회사소개(KOR) | 광고&상담 문의
KYOCHARO NTV ENTERPRISES LTD.
3059 Peachtree Industrial Blvd #210, Duluth, GA 30097
TEL. 1-770-676-0030 | E-MAIL. webmaster@atlantachosun.com
Copyright © KYOCHARO NTV ENTERPRISES LTD.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or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팝업레이어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