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못 하는 3세대 엄마가 만든 100% 한국식 돌잔치… 가슴 벅찬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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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기’가 피어난 돌잔치… 이민 가족의 뿌리,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밴쿠버의 따스한 겨울 햇살 아래, 한 통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약 1년 만에 온 사촌 여동생의 연락이었다. "오빠, 우리 손녀 돌잔치에 꼭 오세요."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설레었다. 어릴 적부터 가끔 만나는 사이지만, 피를 나눈 가족의 핏줄은 언제나 따뜻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카톡으로 초대장을 받아보니 2월7일 토요일 이었다.
더구나 이민 생활 속에서 이런 초대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딸 부부와 손녀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가기로 한 순간, 이미 마음속에는 기대와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돌잔치 장소는 예상치 못한 규모였다. 8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이었고, 문을 열자마자 20년 넘게 보지 못한 반가운 얼굴들이 반겼다.
어릴 적 본 아이들이 이제 장성한 어른이 되어 웃고 있는 모습, 그 광경은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하면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오빠, 오랜만이야!" 사촌 여동생의 포근한 포옹이 모든 어색함을 녹여주었다. 그런데 그 홀 한가운데, 한국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이민 4세인 손녀의 돌상이었다.
사촌 여동생의 딸 – 이민 3세인 그녀는 미국 영사관 직원과 결혼한 사촌 여동생의 자녀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하이브리드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 딸이 자신의 딸의 돌잔치를 100% 한국식으로 꾸몄다는 사실에 나는 숨이 멎을 듯 감동받았다. 돌상 세트는 임대해 와서 완벽하게 재현되었고, 피지계 아빠를 둔 손녀가 입은 한복은 작고 예쁜 꽃처럼 피어나 있었다. 분홍빛 치마저고리,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이 아이가 한국 문화를 이렇게 이어가다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돌잡이 순간은 더욱 특별했다. 작은 손으로 물건을 집는 아이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책을 잡든, 돈을 잡든, 그 모든 게 상징적이지만, 더 큰 의미는 이 행사 자체에 있었다.
한국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 3세가, 자신의 자녀에게 한국의 전통을 물려주려 한 그 마음.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K-컬처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 이것이 국력의 힘이구나." 사촌 여동생의 딸은 피지계 사위와의 결혼으로 다문화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녀의 뿌리는 여전히 한국이었다. 그 뿌리를 손녀에게 심어주려 한 노력이, 홀 안을 가득 채운 감동의 물결로 퍼져나갔다.
그날의 돌잔치는 화려하지 않았다. 크리스털 샹들리에도, 값비싼 플라워 아치도, 전문 포토그래퍼도 없었다. 그저 넓은 홀 한쪽에 차려진 테이블 위에, 누군가의 손으로 정성껏 빚어진 음식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박함이 오히려 더 깊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김밥은 집에서 말아 온 듯 투박한 모양새였지만,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참기름 향과 단단하게 채워진 속재료가 입 안 가득 퍼졌다.
떡볶이는 매콤달콤한 양념이 적당히 배어 있었고, 어딘가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잡채는 채소와 고기가 골고루 어우러져 있었는데, 양념이 과하지 않아서 몇 번이고 젓가락이 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피지 전통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닭고기 요리. 코코넛 밀크와 커민, 강황이 어우러진 그 깊은 향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한국 음식과 피지 음식이 한 접시에 나란히 놓여 있고,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얹는 모습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이런 조화가 가능하다니…” 테이블마다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국식 김치도 있었고, 피지 스타일의 달콤짭짤한 소스에 찍어 먹는 고기도 있었다. 누군가는 “이거 진짜 맛있네, 어디서 배운 거야?” 하며 웃었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접시를 채우며 “이 맛이… 집 생각난다”고 중얼거렸다. 문화가 섞이고, 세대가 섞이고, 국적이 섞인 그 한 접시 안에 오랜 이민 생활을 견뎌온 가족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아이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이민 4세대였다. 아빠는 피지계 캐나다인, 엄마는 한국.미국 이민 3세대. 그런데도 예쁜 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돌상을 마주하며 떡과 케이크를 동시에 집었다.
그 작은 손길이 닿는 순간, 20년, 30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바다 건너 떨어져 살며 조금씩 옅어질 뻔했던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다시금 선명하게 빛났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이 아이가… 우리를 이렇게 기억해 줄 줄이야.” 옆에 앉은 작은 어머니(숙모)가 속삭였다. “한복 입은 모습 보니까… 진짜 한국인 같아서, 가슴이 벅차오르네.”
그날의 돌잔치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웠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스며들어 있었고, 테이블마다 다른 문화가 어깨동무하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통해 이민의 세월, 가족의 사랑, 그리고 뿌리라는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강한 힘인지 우리는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겼다.
돌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쫀득한 단맛과 함께 오랜만에 느껴보는 ‘집’의 온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큰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작은 한복을 입은 아이의 미소 속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해요." 그날의 여운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이 특별한 돌잔치는, 먼 타국에서 피어나는 한국의 꽃처럼 아름다웠다.
사촌 여동생의 딸처럼, 우리 모두가 뿌리를 잊지 않고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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